두 명의 인디 개발자가 같은 AI 도구를 활용해 같은 장르의 플랫포머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며칠 뒤,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결과물을 받아들인다.
도구도 주어진 시간도 같았다. 다른 것은 AI를 대하는 태도, 정확히는 일을 ‘맡겼느냐’ ‘시켰느냐’다.

1년 만에 낡아 버린 말, ‘바이브 코딩’
안드레이 카파시가 ‘바이브 코딩’이라는 말을 만든 것은 2025년 2월이다. 그리고 1년 뒤인 2026년 2월 초, 그는 그 말이 이미 낡았다며 전문가들은 ‘에이전틱 엔지니어링’이라는 이름을 더 선호한다고 밝혔다.
그가 붙인 설명이 흥미롭다. ‘에이전틱’은 이제 개발자가 코드를 직접 쓰는 시간은 거의 없고, 대부분의 시간을 에이전트를 조율하고 감독하는 데 쓴다는 뜻이다. ‘엔지니어링’은 거기에도 기술과 과학,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즉, 분위기에 몸을 맡기고 AI가 내놓는 코드를 받아들이던 시기는 지나갔고, 이제는 배우고 연습해야 하는 ‘오케스트레이션 즉, 지휘의 기술’이 개발의 기본값이 되었다는 선언이다.
인디 개발자에게 이 변화는 기회이자 함정이다. 혼자서도 팀처럼 일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는 기회다. 그러나 지휘하는 법을 익히지 않은 채 일을 통째로 넘기면, 빠르게 만들어지지만 끝까지 플레이되지 않는 게임이 나온다.
빨라진 것은 개발이지, 완성이 아니다
현업 개발자들이 공통으로 짚는 한계가 있다. AI로 기계적으로 동작하는 게임은 놀랄 만큼 빨리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재미있는 최종 결과물로 다듬어 가는 과정은 여전히 쉽지 않다는 것이다.
가장 흔한 착각은 ‘개발이 빨라진 것’을 ‘게임이 완성되기 쉬워진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코드를 쓰는 시간은 줄었지만, 무엇이 재미있는지 정의하고, 플레이하며 판단하고, 무엇을 버릴지 고르는 시간은 줄지 않았다. 오히려 만들 수 있는 것이 많아진 만큼 버려야 할 것도 많아졌다.
판단은 쥐고, 문서화를 시켜라
AI에게 “OO 장르 게임 만들어 줘”라고 말하는 순간, 기획의 판단까지 함께 넘어간다. 무엇이 재미인지, 어디까지 만들지, 무엇을 뺄지를 AI가 정한다. 개발자가 재미를 컨트롤할 영역은 이미 지나가게 된다. 반면 “이 분석 결과를 OO 양식의 기획서로 정리해 줘”라고 말하면 판단은 내 손에 남고, AI는 문서화라는 작업을 맡아 진행하게 된다.
때문에 필자는 AI와 일하는 핵심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 기준을 먼저 문서로 만드는 것. 기준이 있으면 검증할 수 있다. 검증할 수 있으면 틀린 부분만 골라 고칠 수 있다. 부분만 고칠 수 있으면 결정권은 끝까지 사람에게 남는다. 기준이 없으면 마음에 들 때까지 처음부터 다시 시키게 되고, 그때마다 AI는 조금씩 다른 게임을 내놓는다.
이 방향은 소프트웨어 업계 전체가 가는 길이기도 하다. 게임 개발로 옮기면 순서는 이렇다. 기획서를 건넨 뒤 곧바로 구현을 시키지 않는다. 먼저 AI에게 기획서를 요약하게 하고, 모호한 부분에 대해 질문하게 한다.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한 다음 구현을 시키고, 검증된 뼈대를 유지한 채 그 위에서 콘텐츠를 변형하고 확장한다.
“감각의 영역”을 번역하는 일, 분해
이미 검증된 게임 기획서와 소스가 있다면 AI를 통해 순식간에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게임 개발을 처음 시도하는 개발자라면 과연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필자는 백지에서 시작하지 말고 장르 대표작을 역기획하라고 권한다. 게임 디자인의 두 축인 핵심 메커니즘과 레벨 디자인을 분해해 수치와 데이터로 떼어내고, 내가 직접 조절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좋은 교재가 있다. ‘셀레스트’ 개발진은 약 5,400줄에 달하는 플레이어 클래스 코드를 공개했고, 공동 개발자 매디 소슨은 셀레스트의 ‘관용(forgiveness)’ 장치를 직접 정리해 공개했다. 그 목록을 보면 ‘조작감’이라는 막연한 느낌이 어떤 장치들로 이루어지는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 코요테 타임 — 발판에서 떨어진 직후 잠깐 동안은 여전히 점프를 받아 준다.
- 점프 버퍼 — 착지 직전에 누른 점프 입력을 기억했다가 착지하는 순간 실행한다.
- 정점 중력 감소 — 점프 버튼을 누르고 있으면 점프 정점 구간에서 중력이 절반으로 줄어, 공중에서 방향을 잡을 여유가 생긴다.
- 모서리 보정 — 점프하다 모서리에 머리를 찧거나 대시하다 모서리에 걸리면, 살짝 옆이나 위로 밀어 올려 준다.
- 넉넉한 벽 점프 판정 — 벽에서 2픽셀 정도 떨어져 있어도 벽 점프를 허용한다.
‘유저가 기대하는 점프’는 이런 이름 붙은 수치들의 합이다. 그리고 이렇게 이름을 붙여 분해하는 순간 AI와의 대화가 바뀐다. “조작감이 더 좋게”는 AI가 매번 다르게 해석하지만, “코요테 타임을 켜고 값을 슬라이더로 노출해”는 정확히 한 가지로만 해석된다.
여기서 하나 더 권하고 싶은 습관이 있다. 게임을 만들기 전에 튜닝 패널부터 만들게 하는 것이다.
점프·중력·대시 관련 수치를 전부 상단 상수로 빼고, 플레이 중에 슬라이더로 바꾸는 디버그 패널을 붙여줘. 조정값은 프리셋 JSON으로 저장·불러오기.
이 지시 하나로 AI와의 협업 단위가 ‘감’에서 ‘값’으로 내려온다. “더 좋은 조작감”이 “중력 슬라이더 범위를 넓혀 줘”가 된다. 그리고 손맛을 찾는 일, 즉 재미를 판단하는 일은 다시 사람의 손으로 돌아온다.
레벨은 코드가 아니라 데이터다
레벨 디자인도 같은 원리다. 다행히 역기획을 혼자 처음부터 할 필요는 없다. 인기 게임의 팬 커뮤니티에는 이미 레벨을 방 단위로 분해해 둔 위키 자료가 쌓여 있다. AI에게 그 내용을 표로 정리하게 시키고, 사람은 직접 플레이하며 그 분석이 맞는지 검수하면 된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반드시 코드가 아니라 데이터 파일로 남겨야 한다. 레벨이 코드 안에 박혀 있으면 고칠 때마다 AI에게 코드를 수정하게 해야 하고, 그때마다 다른 곳이 깨질 위험이 생긴다. 데이터로 분리되어 있으면 사람이 직접 고칠 수 있고, AI가 만든 레벨이 규칙에 맞는지 기계적으로 검사할 수도 있다.
여기서 기획자에게 정말 큰 선물이 하나 생긴다. 툴이다. 예전에는 기획자가 쓸 레벨 에디터 하나를 얻으려면 툴 프로그래머에게 부탁하고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이제는 기획서에 데이터 형식만 정의되어 있으면 AI에게 전용 에디터를 만들게 할 수 있다. 그 에디터는 곧 기획서를 눈으로 보여 주는 도구가 된다.
맺으며: 마지막 판정은 내가 직접 플레이해서 내린다
바이브 코딩이 인디 개발자에게 준 것은 ‘혼자서도 팀처럼 일할 수 있는 힘’이다. 그러나 그 팀은 저절로 일하지 않는다. 일을 맡기면 팀은 내 게임이 아닌 AI의 평균값을 만든다. 내가 명확히 일을 시키면 팀은 내 기준대로 움직인다.
시키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결국 세 가지를 놓지 않는 일이다. 무엇이 재미인지 정하는 판단, 그 판단을 수치와 데이터와 문서로 옮기는 분해, 그리고 결과를 내 손으로 플레이해 보고 내리는 마지막 판정. 코드는 AI가 쓸 수 있다. 그러나 그 게임이 재미있는지는 끝까지 사람만 대답할 수 있다.
AI에게 일을 맡기지 말고, 시켜라.
글: 정무식 교수(가천대학교 게임영상학과 부교수/공학박사)
정무식 교수는?
1994년 트리거소프트 창업 멤버로 출발하여 엔씨소프트 디렉터, 나스닥 상장사인 그라비티의 사외이사 및 루노소프트의 부사장을 역임한 대한민국 1세대 게임 개발자다. 2003년 한국 최초의 인디게임공모전을 기획, 개최한 이후로 국내 인디게임 육성에 오랜 관심과 지원을 이어왔으며,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게임물관리위원회 위원/이사, 성남시 4차산업특별위 콘텐츠/디지털/공간 분과장 등을 맡아 국내 게임 산업의 발전과 건전한 문화 정착에 힘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