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디 팀의 ‘마왕’은 대개 돈이다
많은 인디 게임 팀의 목표는 판타지 속 모험가 파티와 닮아 있다. 마물을 토벌하고 마왕을 퇴치하는 것, 다시 말해 유명해지고 큰 성공을 거두는 것, 결국 돈을 버는 것이다.
물론 회사를 운영하는 목적은 분명 이익 추구이고, 게임 업계를 둘러보면 로또처럼 단번에 성공하는 운 좋은 팀이 분명히 있다. 그리고 판타지 소설 속 순진한 모험가 파티가 그러하듯, 대부분의 인디 팀 역시 퍼블리싱 계약과 외부 투자를 막연히 기대하고, 무엇보다 지금 만드는 게임으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으리라는 나름의 기대를 품는다.
지도가 바뀐 세계
하지만 현실은 이미 다르다. 데이터 분석 서비스 Gamalytic에 따르면 2025년 스팀에 출시된 약 1만 3천 편의 게임 가운데 60% 이상이 매출 1,000달러에도 미치지 못했고, 약 40%는 스팀 등록비 100달러조차 회수하지 못했다. AI로 인해 출시되는 게임의 수는 매 순간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만, 게임 구매에 지갑을 여는 유저의 수는 좀처럼 늘지 않는다.
이런 환경에서 인디가 어설프고 섣부른 출시로 돈을 버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상당한 자본과 노력을 기울인 웰메이드 게임조차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다. 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인디의 경우 돈을 목적으로 하는 순간 대부분의 첫 게임 개발은 실패한 여정이 된다.
우리 게임 개발의 목적은 무엇인가?
대부분의 판타지는 마왕을 쓰러뜨리는 순간을 향해 달려간다. 주인공이 극한의 상황을 극복하고, 동료를 모으고, 마침내 최종 보스 앞에 서는 것. 그것이 클라이맥스이자 이야기의 끝이다.
하지만 <장송의 프리렌>은 그 궤를 완전히 달리한다. 이 작품은 용사 일행이 마왕을 쓰러뜨리고 왕도로 귀환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다른 작품이라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자리에서 첫 화가 열리는 셈이다.
천 년을 넘게 사는 엘프 마법사 프리렌이 동료들과 함께했던 여정을 다시 밟아가는 이 이야기는 영웅 서사에 치우친 기존의 판타지 컨셉과 달리 지금 내 옆의 동료와 함께하는 소소한 모험을 서정적이면서도 섬세한 감정선으로 그려내는 판타지 명작이다.
게임 개발 또한 마찬가지다. 우연한 횡재가 오히려 삶을 피폐하게 만든 수많은 로또 당첨자들의 귀결까지 굳이 꺼내지 않더라도, 인디 팀의 목표가 퍼블리싱이나 투자 유치, 매출 발생, 그리고 집요한 과금 설계로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매출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는 두 가지 이유
첫째, 확률의 문제다.
인디는 선택과 집중이다. 우리가 콘텐츠와 재미라는 가장 단순한 목표에만 온전히 집중한다 해도, 수많은 메이저 스튜디오와 고도화된 개발사의 게임들, 이미 검증된 명작과 대작들 사이에서 유저의 선택을 받는 것은 매우 어렵다. 모두가 돈을 벌고 싶어 하고, 저마다 집요하게 연구한다. 그럼에도 선택받고 있는 것은 극소수다. 아마추어가 프로를 상대하기 어렵듯, 고도화된 지금의 시장에서 인디가 드라마틱한 매출을 낸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둘째, 족쇄의 문제다.
게임이 아직 섣부르고 어설픈 단계에서,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채 맺은 퍼블리싱 계약과 투자는 장기적으로 모두 족쇄가 된다. 낮게 매겨진 가치, 불리한 조건, 혹은 상호 이해의 부족, 무엇보다 계약 후 내가 남의 일정과 조건에 맞춰야 하는 압박. 마왕을 빨리 잡으려고 서두르다가 정작 우리 파티가 가진 정체성과 방향을 모두 잃게 되는 것이다.
모험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
모든 모험이 의미를 가지는 것은 바로 내 옆의 동료와 함께하기 때문이다.
미믹에게 물려가면서까지 보물상자 속 마도서를 포기하지 못하는 프리렌, 쓸모없어 보이는 마법을 모으기 위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는 그녀를 동료들은 종종 어이없어한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 ‘쓸모없는 마법’들이 사람과 사람을 잇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험을 통해 동료의 소중함을 알아가는 프리렌의 모습은 효율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가치를 보여준다.
인디 개발도 마찬가지다. 시장 논리로 보면 비효율적인 것들, 이상하지만 우리만이 가진 특징, 꾸준히 올리는 개발 일지, 유저 한 명 한 명에게 남기는 답글이 바로 그 팀만의 ‘고유한 마법’이 될 수 있다. 메이저가 흉내 낼 수 없는 인디의 가치는 바로 이런 곳에서 나온다.
먼저 찾아야 할 것은 매출이 아니라 ‘유저’다
그래서 인디는 매출이 아니라 내 게임의 유저를 확보하는 것을 우선 목표로 삼아야 한다. 내 이야기를 즐겨주는 유저, 그리고 나와 소통하는 유저가 있는 것. 그것이 출발점이다.
프리렌이 다시 걷는 길 위의 마을들에는 수십 년 전 힘멜 일행이 남긴 흔적이 있다. 거창하고 위대한 전투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을 도왔던 작은 친절들이다. 그들과 연결되었던 사람들이 그것을 기억하고, 그 기억이 결국 용사의 이야기를 살아 있게 만든다.
인디의 초기 유저와 작은 커뮤니티도 그렇다. 그들은 당신의 게임을 기억하고, 당신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려 줄 사람들이다. 유저에게 내 게임을 즐길 만한 명확한 명분을 만들었다면, 그 이후의 매출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오늘 우리의 개발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필자가 수많은 중견 게임 개발사 대표와 인디 개발팀에게 늘 건네는 조언은 ‘당신의 팀과 함께하는 오늘의 개발을 의미 있게 만들어 가시라’는 것이다. 인디 팀의 진정한 행복은 퍼블리싱 계약, 투자 유치, 매출 발생과 함께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인디라면, 동료와 함께하는 오늘의 개발이 즐겁거나, 적어도 의미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게임을 통해 유저와 함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일 자체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여정에서 마왕을 쓰러뜨리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여정이 실패로 남을지 아닐지는, 결국 우리가 무엇을 목적으로 삼았느냐에 달려 있다.
글: 정무식 교수(가천대학교 게임영상학과 부교수/공학박사)
정무식 교수는?
1994년 트리거소프트 창업 멤버로 출발하여 엔씨소프트 디렉터, 나스닥 상장사인 그라비티의 사외이사 및 루노소프트의 부사장을 역임한 대한민국 1세대 게임 개발자다. 2003년 한국 최초의 인디게임공모전을 기획, 개최한 이후로 국내 인디게임 육성에 오랜 관심과 지원을 이어왔으며,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게임물관리위원회 위원/이사, 성남시 4차산업특별위 콘텐츠/디지털/공간 분과장 등을 맡아 국내 게임 산업의 발전과 건전한 문화 정착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