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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럼] 스팀 생존의 두 갈래길, 유행을 탈 것인가, 장르를 팔 것인가

    중간은 없다. 인디 개발자가 반드시 선택해야 할 두 개의 축에 대하여
    By Desk2026년 09월 22일Updated:2026년 09월 24일6 Mins Read

    작년 한 해 스팀에는 역대 최다 기록인 19,112개의 게임이 출시됐다. 하루 평균 52개, 한 시간에 두 개 이상의 게임이 스토어에 올라온다는 뜻이다. 또한, 하루 만에 게임을 완성하는 AI 딸깍 개발의 시대를 맞아, 이미 시장에 출시되는 게임의 양은 매 순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밸브가 태그를 갈아엎은 날

    2026년 5월 18일은, 밸브가 스팀 태그 체계를 대대적으로 업데이트한 날이다. 17개의 태그가 새로 생기고 21개가 사라졌다. 그리고 업데이트의 목록을 찬찬히 뜯어보면, 지금 PC 게임 시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신설된 태그 중에는 Desktop Companion(데스크탑 컴패니언) 이 있다. 바탕화면 한구석에 머물며 사용자와 함께 존재하는, 전통적 의미의 ‘플레이’라고 부르기 애매한 소프트웨어들이 이제 하나의 장르로 공인받았다는 뜻이다. Bullet Heaven이 신설되면서 뱀파이어 서바이버류는 마침내 공식 이름을 얻었다. 그리고 기존의 Clicker는 Incremental로 개명됐다. 반대로 ‘Masterpiece’, ‘Cult Classic’, ‘Well-Written’ 같은, 작품의 격을 평가하던 주관적 태그들은 정리되어 사라졌다.

    플랫폼이 무엇을 이름 붙이고 무엇을 지우는지는 그 자체로 시장 보고서다. 즉 이제 밸브는 ‘걸작’을 분류하는 일을 그만두고, 유저들의 게임 소비 방식을 중심으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길: 유행의 축 — 게임은 이제 SNS와 경쟁한다

    게임의 경쟁자는 더 이상 게임이 아니다

    《메차카멜레온》으로 완성된 파티 게임과 친구들과 함께 웃고 끝내는 다양한 프렌드슬롭(Friendslop) 게임들. 컨셉과 스타일은 제각각이지만 이들이 공유하는 구조는 하나다. 짧고, 가볍고, 즉시 웃기고, 소진된다.

    이것은 게임이 못 만들어졌기 때문이 아니다. 이제 게임의 경쟁 대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플레이어의 저녁 두 시간을 놓고 다투는 것은 다른 게임이 아니라 숏폼 미디어와 SNS다. 30초마다 보상이 꽂히는 매체와 같은 주의력 시장에서 싸우는 이상, 게임의 리듬도 그쪽으로 끌려간다. 즉, 세대의 변화에 따른 게임의 숏폼화는 게임의 타락이 아니라 시대적 적응이다.

    그리고 이 축에서 통하는 원칙은 단순하다. 자극적이고, 짧고 굵게, 더 빨리 즐겁게.

    핵심은 이 축의 유저층이 메인스트림, 그리고 청소년 중심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SNS의 큰 축으로 흐름을 주도하며 트렌드에 민감하고 하나의 게임을 오래 파지 않는다. 계속해서 소모할 다음 게임, 즉 다음 재료를 찾는다. 때문에 그들이 찾는 채널은 스팀 스토어가 아니라 쇼츠와 틱톡, 그리고 스트리밍 채널이다. 그들은 유행을 만들어 가면서 또 끊임없이 유행을 쫓는 대상이다.

    두터운 유저풀 → 끊임없는 게임 소비 → SNS 유행 → 다시 유저풀 확대

    인플루언서는 흥행에 가장 민감한 안테나를 가진 집단이다. 그들은 뜰만한 재료를 귀신같이 찾아내 먼저 올라탄다. 즉 이 축에서 마케팅의 본질은 ‘인플루언서에게 키를 뿌리는 일’이 아니라, 인플루언서가 올라타고 싶어 할 재료를 미리 만드는 일이다.

    이 축에서 통하는 설계 원칙

    첫 30초 안에 게임의 전부가 보여야 한다. 튜토리얼, 세계관 설명, 서서히 열리는 시스템은 이 축에서는 전부 비용이다.

    클립이 되는 장면이 게임 안에 설계돼 있어야 한다. 플레이어가 웃음을 터뜨리는 순간, 혹은 비명을 지르는 순간이 의도적으로, 반복 가능하게, 짧은 간격으로 배치돼야 한다. “플레이하면 재밌다”가 아니라 “보고 있으면 재밌다“가 기준이다.

    개발 기간과 가격이 유행의 반감기보다 짧아야 한다. 유행 축에서 18개월짜리 개발 계획은 그 자체로 실패한 설계다. AI 중심의 개발이 현실이 된 지금, 유행의 감지에서 출시까지의 사이클을 3~6개월 이내로 압축하지 못한다면 이 축에 서지 않는 편이 낫다.

    타이밍이 품질을 이긴다. 냉정하게 말해, 이 축에서는 두 달 먼저 나온 80점짜리가 두 달 늦게 나온 95점짜리를 이긴다.

    이 축의 함정

    유행에는 반감기가 있고, 후발주자의 무덤은 늘 선두보다 훨씬 크다. 무엇보다 이 축에서 얻은 성공이 팀의 정체성으로 누적되지 않으므로 항상 다음 작품에서는 제로에서 시작해야 한다. 한 번의 우연한 대박이 스튜디오의 지속 가능성을 결코 보장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때문에 이 축을 택한다면 한 번의 히트가 아니라 기술보다 창의적인 센스, 그리고 트렌드를 앞서는 도전정신, 더불어 수십 번 타석에 선다는 각오로 본인의 개발 체력을 설계해야 한다.

    두 번째 길: 장르 니치의 축 — 신뢰를 파는 시장

    전혀 다른 소비자

    스팀 구매자의 반대편 축에는 완전히 다른 집단이 있다. 이들은 신중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을 고르고, 꾸준히, 천천히 소모한다. 유행에 반응하지 않는 대신, 검증되고 신뢰할 수 있는 콘텐츠에는 지갑을 연다. 그리고 한 번 신뢰를 준 개발사의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

    CRPG, 하드코어 전략, 서바이벌 크래프팅, 정통 메트로배니아, 시뮬레이션, 리듬, 슈팅. 숫자는 유행 축보다 작지만, 꺼지지 않는다. 유행 축의 성공 곡선이 며칠 만에 치솟았다 한 달 만에 사라지는 스파이크라면, 이 축의 곡선은 낮고 길게 이어지는 고원이다. 그리고 그 고원 위에서 나의 작품을 기다리는 팬층과 소통하며 후속작을 만들어 간다.

    제1 조건: 개발자 본인이 그 장르의 핵심 소비자여야 한다

    이 축에 서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기술도 자본도 아니다.

    개발자 본인이, 스스로가, 그 장르의 핵심 소비자여야 한다.

    니치 장르의 유저들은 만든 사람이 그 장르를 실제로 사랑하는지 아닌지를 콘셉트 한 장만으로, 데모 구성만으로도 알아챈다. 장르의 문법을 표면만 베낀 게임은 커뮤니티에서 가장 먼저, 가장 가혹하게 걸러진다. 즉 이 축에서 ‘장르 진정성’은 시장조사로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자 마케팅 기법을 넘어서는 개발자의 자부심이자 긍지이다.

    메커니즘의 이해가 레벨 디자인의 깊이를 결정한다

    그 장르의 유저가 무엇에 소구하는지 — 어떤 콘셉트, 어떤 특징, 어떤 순간에 반응하는지 — 를 예리하게 노려 들어가야 한다. 그러려면 장르의 핵심 메커니즘을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 ‘이해’란 소울라이크에는 패링이 있고 로그라이크에는 영구 죽음이 있다는 수준의 목록화가 아니다. 그 메커니즘이 왜 재미를 만들어내는지, 어떤 조건에서 무너지는지를 아는 것이다. 회피 무적 프레임이 몇 프레임인지에 따라 전투의 성격 전체가 바뀌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메커니즘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없다면 제대로 된 게임 디자인은 구성될 수 없다. 플레이 콘셉트의 창의성은 레벨 디자인을 더욱 어렵게 만들기 때문에 인디 게임 개발자의 발목을 잡게 된다. 장르 유저가 내 게임에 기대하는 것은 혁신과 창의가 아니라 혁신과 창의를 가장한 검증되고 익숙한 재미, 즉 내가 구매한 장르 게임에 대한 지불 가치 이상의 만족스러운 경험이다. 때문에 니치 유저는 콘셉트로 접근하더라도 정확히 장르 명작과의 비교 경험 즉 레벨 디자인의 깊이를 포함해 게임을 평가한다. 분량이 아니라, 깊이다.

    개발 착수 전부터 소통하라

    이 축의 마케팅은 출시 3개월 전에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개발에 들어가기 전부터 시작한다.

    아트 컨셉, 게임 컨셉, 핵심 메커니즘의 방향을 초기부터 해당 커뮤니티에 노출하고, 그들과 대화하며, 왜 이 게임을 만드는지를 설득해 나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팀은 두 가지를 동시에 얻는다. 하나는 설계 검증이고, 다른 하나는 출시 전에 이미 확보된 구매층이다.

    유행 축의 마케팅이 ‘발견되는 것’이라면, 니치 축의 마케팅은 ‘내 게임을 구매할 유저와 사전에 신뢰를 쌓아 나가는 것’이다. ‘이 게임은 내가 반드시 사야 해’라는 구매의 명분을 심어 주어야 하며, 결제, 즉 지불 과정의 신뢰는 결코 짧은 기간에 구축될 수 없다.

    최악의 선택은 중간이다

    스팀에서 조용히 사라지고 있는 대부분의 게임들은 결코 못 만든 게임이 아니다. 어느 축에도 속하지 않은 게임이다.

    최근 유행하는 게임의 가벼움을 추구하면서 3년간 진지하게 개발을 했다. 반대로 니치 장르의 문법을 표방하면서 정작 그 장르의 깊이와 핵심 레시피는 모른다. SNS에서 터지기에는 너무 진지하고, 코어 유저를 설득하기에는 너무 얕다. 결과적으로 어느 결제 집단에도 속하지 않는 애매모호한 게임이 된다.

    “좋은 게임을 만들면 언젠가 알아준다”는 성공한 몇몇 인디 게임 개발자들의 말은 셀 수조차 없는 수많은 슬롭 게임들 속에서 이제 위로가 아니라 방치에 가깝다. 좋은 게임도 많고 위시리스트에 담긴 명작, 대작들은 늘 파격적인 할인가로 먼저 팔리고 있다. 핵심은 좋은 게임을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내 게임이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반드시 구매되게 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타깃팅과 치밀한 구매 유도 전략이다.


    글: 정무식 교수(가천대학교 게임영상학과 부교수/공학박사)

    정무식 교수는?

    1994년 트리거소프트 창업 멤버로 출발하여 엔씨소프트 디렉터, 나스닥 상장사인 그라비티의 사외이사 및 루노소프트의 부사장을 역임한 대한민국 1세대 게임 개발자다. 2003년 한국 최초의 인디게임공모전을 기획, 개최한 이후로 국내 인디게임 육성에 오랜 관심과 지원을 이어왔으며,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게임물관리위원회 위원/이사, 성남시 4차산업특별위 콘텐츠/디지털/공간 분과장 등을 맡아 국내 게임 산업의 발전과 건전한 문화 정착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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