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동안 만들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 미야자키 하야오, 82세
미야자키의 다큐멘터리 제목은 바로 질문이다. 요시노 겐자부로의 1937년 소설에서 가져온 이 질문은 소년에게 던지는 어른의 메시지다. 어떤 세계가 와도, 어떤 시대가 와도, 너는 어떻게 살 것인가.

82세의 노인은 다시 연필을 쥐었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은 책상 앞, 2013년 은퇴를 선언했던 미야자키 하야오는 여전히 매일 아침 출근하고 있었다. 노인의 허리는 굽었고, 손은 예전만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만들고 싶은 것이 있다.”
7년의 촬영 기간을 통해 2024년 일본에서 개봉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걸어온 길, 그리고 주변의 전우들을 하나씩 떠나보내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는 고통스런 창작의 과정을 묵묵히 담아낸 영화이다.
다큐멘터리는 디지털 제작이 업계 표준이 된 지금, 한 장 한 장의 원화를 다시 그려 나가는 그 과정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카메라 안에 담긴 것은 천재의 화려하고 멋진 창작 현장이 아니었다. 의심하고, 버리고, 지치고, 그럼에도 다시 앉아야만 하는 한 노인의 집요한 창작 과정이었다.
거기서 보인 것은 고통이었지만, 이 거장의 고통을 담아낸 다큐멘터리는 이미 AI 기반 창작이라는 태풍의 눈 안에 들어와 버린 우리 창작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너무도 크다.
창작은 천재의 산물이 아니다
우리는 오래도록 창작에 대한 낭만적 거짓말을 믿어 왔다. 천재는 어느 날 영감을 받고, 쏟아지듯 작품을 완성하며, 세계를 바꾼다는 이야기. 하지만 다큐멘터리가 담고 있는 미야자키는 달랐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시작했다. 콘티를 그리다 멈추고, 스태프들에게 “이건 아닌 것 같아”라고 중얼거린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한 컷도 완성하지 못했다. 수십 년 경력의 거장이 매일 처음 시작하는 사람처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창작의 진실‘이다.
AI 시대에, 누구나 손쉽게 제작을 시도한다. 그렇기에 제작을 넘어선 창작, 이는 천재적 아이디어의 결과물이 아니라, 고통을 통과해 낸 인간이 만들어낸 고고한 산물이 되어야만 한다. 머릿속 완벽한 그림과 손끝의 현실 사이의 간극을 매일 직면하면서, 그 간극을 조금씩 좁혀 가는 지난한 작업. 그 과정에서 흘린 수많은 실패와 회의와 자기 의심 — 그것들이 모두 작품 안에 스며든다. 관객이 어떤 장면에서 이유 없이 뭉클해지는 이유는 그 장면을 만든 누군가의 고통이 보이지 않는 감동의 언어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AI 창작 시대, 잘못된 질문
AI의 발전은 눈부시다. 이제 AI는 사람보다 빠르게 완벽하게 코드를 짜고, 아트를 생성하고, 음악을 만들고, 스토리를 쓴다. 게임 개발자 커뮤니티에서는 매일 새로운 두려움이 피어오른다.
“AI가 내 자리를 빼앗지 않을까?” “AI보다 잘 만들 수 있을까?” “AI를 얼마나 써야 뒤처지지 않을까?”
이 질문들은 모두 같은 전제를 공유한다. 바로 AI와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
하지만 바로 그 전제 자체가 틀렸다.
미야자키가 CGI 전성시대에 손그림 애니메이션을 고집한 것은, CGI를 이길 수 있어서가 아니었다. 속도, 효율, 비용 — 모든 면에서 디지털은 이미 아날로그를 이겼고 그는 이미 그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연필을 쥔 이유는 단 하나다. 그가 만들고자 하는 것은 효율로 만들어질 수 없는 가치를 담아낸 창작자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범접할 수 없는 보법
무협소설에는 ‘보법(步法)’이라는 개념이 있다. 단순히 빠른 발놀림이 아니라, 적이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움직임의 방식 그 자체를 뜻한다. 이길 수 없는 적을 상대하는 방법은 그보다 더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보법을 보여주는 것이다.
AI는 이미 인류가 만들어 온 모든 것을 학습했다. 수백만 개의 게임, 무수한 아트 스타일, 검증된 게임 디자인 패턴. AI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가장 정교한 합성자다. 하지만 그것이 AI의 힘이자 동시에 AI의 한계다.
AI는 감성을 흉내 낼 수 있지만 감정을 담아낼 수 없고, 작품에 서사를 구성할 수 있지만 욕망과 고통을 담아낼 수 없다.
우리가 처음 플레이한 게임에서 느낀 어떤 감각, 첫 사랑과 교환했던 손글씨로 담아낸 편지, 할머니의 손에서 났던 아렷하고 정겨운 냄새, 긴 여행에서 돌아온 뒤 내 고향과 집이 주는 따뜻함, 혹은 비 내리는 버스 정류장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호감가는 이성에 대한 두근거림 등 이 모든 것이 뒤엉켜 만들어져 구축된 나만의 세계관 — AI는 결코 그 서사와 감성, 그리고 인간의 욕망을 가질 수 없다. 인간성, 미묘하고도 복잡한 감정선, 카타르시스: 그 욕망의 서사 속에서 그 욕망이 만들어내는 고통, 그리고 그 고통이 만들어내는 작품이 탄생한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가져가야 할 제작의 보법이다.
인디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그는 말했다. 이 영화는 자신을 위한 영화라고. 자신의 죄와 결핍, 아들에게 제대로 된 아버지가 되지 못했던 기억, 전쟁의 기억, 그리고 살아남은 자로서의 죄책감 — 그것들을 다 담으려 했다고.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미야자키는 7년을 매달린 작품의 완성본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아직도 모르겠어. 잘 만든 건지.”
82세의 거장. 하지만 연로한 노인, 그의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 생의 마지막 작품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묵묵히 하루하루 깨진 유리 계단을 매일 밟고 오르는 그 고통의 과정을 담담히 지켜본 후,
지금 나는 이 질문을 지금 나 스스로와 당신에게 건네본다.
그렇다면 우리(인디)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리고 오늘 하루를 과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글: 정무식 교수(가천대학교 게임영상학과 부교수/공학박사)
정무식 교수는?
1994년 트리거소프트 창업 멤버로 출발하여 엔씨소프트 디렉터, 나스닥 상장사인 그라비티의 사외이사 및 루노소프트의 부사장을 역임한 대한민국 1세대 게임 개발자다. 2003년 한국 최초의 인디게임공모전을 기획, 개최한 이후로 국내 인디게임 육성에 오랜 관심과 지원을 이어왔으며,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게임물관리위원회 위원/이사, 성남시 4차산업특별위 콘텐츠/디지털/공간 분과장 등을 맡아 국내 게임 산업의 발전과 건전한 문화 정착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