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게임 업계를 강타한 ‘해고 한파’가 한국 게임 산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시작된 대규모 구조조정 바람이 국내 게임사들의 고용 불안으로까지 이어지며, 업계 전반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개발자 10명 중 1명 해고… 내러티브 분야 타격 최대
GDC(게임 개발자 GDC(게임 개발자 컨퍼런스)가 1월 29일 발표한 ‘2025 게임 산업 현황 보고서(State of the Game Industry)’에 따르면 지난 1년간 개발자의 11%가 해고를 경험했으며, 내러티브 분야는 19%로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반면 비즈니스 및 재무 분야는 6%로 상대적으로 적은 영향을 받았다.
이번 조사는 86개국 3,000명 이상의 게임 개발자를 대상으로 실시됐으며, 응답자의 58%가 미국, 7%가 영국, 6%가 캐나다 출신으로 주로 서구권 개발자들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보고서는 응답자의 41%가 해고의 영향을 받았다고 답했으며 이 중 29%는 직접적인 동료가, 18%는 다른 팀 개발자가 해고되는 것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또한 4%는 스튜디오 폐쇄로 인한 해고를 경험했다.
구조조정 이유? “재편성 22%, 수익 감소 18%”
해고 이유로는 구조조정이 22%로 가장 많았고, 수익 감소가 18%, 시장 또는 산업 변화가 15%를 차지했다. 주목할 점은 19%의 개발자가 해고 이유에 대한 설명조차 전혀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팬데믹 기간 비대면 특수를 노리고 공격적으로 인력을 충원했던 글로벌 게임사들이 경기 침체에 맞춰 긴축 경영으로 전환한 것이 주된 배경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MS), 라이엇 게임즈, 유비소프트 등 글로벌 대형 게임사들은 최근 잇따라 대규모 감원을 단행하며 비용 절감에 나섰다.
투자 한파… 개발자 절반 이상 ‘자체 자금’으로 버틴다
투자 유치의 어려움도 심각한 수준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개발자의 56%가 자체 자금으로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이는 외부 투자 유치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퍼블리싱 계약 및 프로젝트 기반 펀딩은 28%, 정부 지원금이나 벤처캐피털, 공동 개발 계약은 각각 15%에 그쳤다. 특히 벤처캐피털의 경우 32%가 ‘전혀 성공적이지 않았다’고 응답해 투자 환경의 악화를 보여줬다.
고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게임 산업에 대한 투자 심리가 급격히 위축된 것으로 풀이된다. 개발자의 절반 이상이 외부 투자 없이 자체 자금만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은 개발 규모 축소와 품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PC 플랫폼 독주… 모바일 축소도 고용한파에 한몫
플랫폼 측면에서는 PC의 압도적인 우위가 확인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개발자의 80%가 PC 플랫폼용 게임을 개발 중이며, 이는 스팀 덱(Steam Deck)과 같은 휴대용 PC의 인기에 힘입은 결과로 분석된다.
과거 전체 게임 시장의 성장을 견인하며 ‘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던 모바일 게임 시장은 38%로 두 번째를 차지했으나, 이는 전년 대비 7%포인트 감소한 수치로 유례없는 성장 둔화와 마주했다.
2020년대 초반 팬데믹 특수를 누리며 폭발적으로 팽창했던 시장 규모는 2024년을 기점으로 정체기에 진입했으며, 2026년 현재는 주요 국가에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거나 점유율이 PC·콘솔로 이동하는 ‘역성장 및 구조적 재편’ 현상이 뚜렷해지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한때 ‘꿈의 직장’으로 불리던 게임 업계는 매서운 고용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수년간 성장을 견인해 온 모바일 게임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기업들이 ‘비용 절감’과 ‘체질 개선’을 위해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에 나섰기 때문이다.
AI 도입 가속화에 따른 인력 대체 현실화, “신입 안 뽑는다”
인건비 부담을 느낀 게임 기업들은 생성형 AI를 개발 공정에 본격 도입하면서 단순 그래픽 작업, QA(품질 검사), 번역 직군에서의 감원 현상도 가속화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북미 대형 게임사들은 AI 기반 QA 자동화 도구를 도입하며 테스터 인력을 30% 이상 감축했고, 중국 대형 게임사 넷이즈(NetEase)와 텐센트는 원화 제작 공정에 AI를 적극 도입하여 외주 비용을 40% 이상 절감했다.
유비소프트(Ubisoft)와 소니는 AI 기반의 자동 플레이 테스트 시스템을 도입해 사람보다 수만 배 빠른 속도로 오류와 밸런스를 잡아내고 있다. QA 인력은 2024년 대비 약 50% 이상 감축되었으며, 현재는 AI가 찾지 못한 감성적인 영역만 최소한의 인력이 검수하는 구조로 개편되었다.
국내에서도 모바일 게임의 카드 일러스트나 캐릭터 스킨 제작에 AI를 활용하면서 과거 ‘도트 노가다’나 ‘채색 어시스턴트’로 불리던 저연차 아티스트들의 신규 채용은 사실상 중단되고 있는 추세다.
“AI가 사람을 돕는 단계를 넘어 특정 직군 자체를 소멸시키고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는 이제 업계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다. 현실적으로 개발 현장에서 필요한 인력은 ‘직접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AI의 결과물을 판단하고 수정하는 디렉터급 인력’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주니어 개발자들의 성장 기회를 박탈하고, 장기적으로는 업계의 인적 자원 고갈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로 이어진다.
한국 게임 업계도 예외 아냐… 중소·인디 개발사 타격 우려
글로벌 게임 업계의 구조조정 바람은 한국 게임 산업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해외 퍼블리셔와의 계약이 무산되거나 투자 유치에 실패하는 국내 개발사들이 늘어나면서 고용 불안이 가시화되고 있다.
특히 자금력과 인력이 부족한 중소·인디 게임 개발사들은 글로벌 시장 침체의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해외 시장 진출을 목표로 개발을 진행했던 스튜디오들이 투자 중단으로 프로젝트를 접거나 인력을 감축하는 사례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GDC 보고서가 보여주는 자체 자금 의존도 증가, 외부 투자 유치 어려움 등은 국내 개발사들이 직면한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내에서도 벤처캐피털의 게임 분야 투자가 급감하면서 많은 개발사들이 자체 자금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규모를 축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소·인디게임 개발사에 대한 “생태계 차원의 대책 필요”
전문가들은 글로벌 게임 업계의 고용 불안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고금리 기조가 지속되고 투자 심리가 회복되지 않는 한, 게임사들의 보수적인 인력 운영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국내 게임 업계에서도 생태계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소·인디 개발사에 대한 정책적 지원 강화, 재교육 프로그램 확대,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등을 통해 인력 유출을 최소화하고 산업 경쟁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임업계 관계자들은 “글로벌 구조조정 여파가 국내에도 본격화되기 전에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며 “특히 인디게임 개발자들이 업계를 떠나지 않도록 정부차원의 실질적인 지원책과 자금력 있는 퍼블리셔들의 인큐베이팅 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