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벤처투자와 함께 2026년 총 7,318억 원 규모의 콘텐츠 정책펀드를 조성한다고 23일 밝혔다. 전년 대비 1318억 원(22%) 증가한 역대 최대 규모다. 하지만 전체 콘텐츠 산업 매출의 13.6%를 차지하며 콘텐츠 수출의 핵심 축을 담당하는 게임 산업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 계획은 찾아볼 수 없어 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영화는 818억원 별도 편성, 게임은 ‘기타 포함’

이번 펀드 조성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분야별 투자 배분의 불균형이다. 영화 산업을 위해서는 별도로 영화계정 818억 원(3개 자펀드)을 편성하고, 한국영화 메인투자 펀드를 2025년 396억 원에서 2026년 567억 원으로 43.2%나 확대했다. 중저예산 한국영화 펀드 134억 원, 애니메이션 전문 펀드 117억 원 등 세부 항목까지 명확히 제시했다.

반면 게임 산업은 문화기술(CT) 펀드 1,000억 원과 콘텐츠 신성장 펀드 750억 원에 ‘공연, 영상, 게임 등’이라는 표현으로 여러 분야와 함께 뭉뚱그려 언급될 뿐이다. 게임 분야에 얼마나 투자되는지, 어떤 방식으로 지원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전체 콘텐츠산업 수출 64% 차지해도, 정책 지원은 ‘뒷전’

2023년 국내 게임산업 매출액은 22조 9,642억 원으로 전년 대비 3.4% 증가했으며, 수출액은 83억 9,400만 달러(약 10조 9,785억 원)에 달했다. 게임은 콘텐츠 수출의 절대 강자로, 2023년 상반기 기준 전체 콘텐츠산업 수출액의 64%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미국, 중국, 일본에 이어 세계 게임 시장 점유율 4위를 차지하는 게임 강국이다. 그럼에도 정부의 콘텐츠 정책펀드에서 게임은 독립적인 투자 카테고리조차 확보하지 못했다.

IP·수출 펀드에도 게임 비중 불분명

문체부는 이번 펀드의 핵심으로 IP 펀드 2,000억 원과 수출 펀드 2,000억 원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들 펀드에서 게임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나 우선순위에 대한 내용은 언급조차 없다. 게임이 IP의 원천이자 수출의 주력임에도 불구하고, 웹툰, 드라마, 영화 등 다른 콘텐츠와 동등하게 경쟁해야 하는 구조다.

특히 문화기술(CT) 펀드의 경우 ‘공연, 영상, 게임 등 핵심 분야의 신기술 개발’이라고만 명시되어 있어, 게임 기술 개발에 실제로 얼마나 투자될 지는 미지수다. 콘텐츠 신성장 펀드 역시 ‘창업 초기 기업과 게임·웹툰 등 미래 유망 분야’라는 포괄적 표현에 그쳤다.

“게임은 늘 ‘기타’ 취급”…규제는 유지, 지원은 불분명

게임업계 관계자는 “게임 산업이 콘텐츠 수출의 64%를 담당하는데도 정책 지원에서는 늘 ‘기타 등등’으로 묶인다”며 “영화처럼 독립된 계정이나 명확한 투자 목표가 없으니 실질적으로 얼마나 지원받을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문체부가 ‘K-컬처 300조원 시대’를 외치지만, 정작 그 중심에 있는 게임은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다”며 “게임에 대한 구체적 지원 계획 없이는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한국 게임 산업은 그동안 각종 규제 속에서도 자생적으로 성장해왔다. 게임시간선택제, 셧다운제 등 게임 분야에만 적용되는 특수 규제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정책적 지원마저 불분명하다는 점은 업계의 불만을 키우고 있다.

임성환 문체부 문화산업정책관은 “2026년 콘텐츠 정책펀드는 신성장 분야와 회수시장까지 포괄해 콘텐츠 기업의 안정적 성장과 K-콘텐츠의 세계 경쟁력 공고화를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게임 업계는 말보다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요구하고 있다.

중소·인디 게임사 위한 ‘게임 계정’ 신설 요청…문체부는 “수익성 우려”

게임업계는 이미 문체부에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한 바 있다. 최근 국회 토론회 등을 통해 문화 계정과 별도로 중소·인디 게임사 집중 투자를 위한 ‘게임 계정’ 신설을 공식 요청했다. 영화 산업처럼 게임 산업도 독자적인 펀드 운용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문체부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게임 펀드의 수익성이 낮다는 점과 기존 문화 계정으로도 게임사 지원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임성환 문체부 문화산업정책관은 국회 토론회에서 “게임에 더 많은 국내 자본이 유입돼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전용 계정으로 손실이 발생할 시 계정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업계는 이러한 문체부의 입장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영화 펀드도 수익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닌데, 유독 게임에만 ‘수익성’을 문제 삼는 것은 이중 잣대”라며 “게임 계정이 손실 위험이 크다면, 오히려 그만큼 민간 투자가 꺼리는 중소·인디 게임사에 정책 지원이 더 필요하다는 방증 아니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문체부가 ‘기존 문화 계정으로 지원 가능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게임이 여러 분야와 경쟁하다 보니 투자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게 현실”이라며 “독립 계정이 없으면 게임 산업 지원은 계속 뒷전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대기업 중심 게임 생태계, 중소·인디는 투자 사각지대

게임 계정 신설 요구가 나온 배경에는 국내 게임 산업의 구조적 문제가 있다. 현재 한국 게임 시장은 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 크래프톤 등 대기업이 대부분의 매출을 차지하는 구조다. 이들 대기업은 자체 자본이 충분해 정책펀드가 굳이 필요하지 않다.

반면 중소·인디 게임사는 만성적인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게임 개발에는 통상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의 초기 투자가 필요하지만, 수익 발생까지 2~3년 이상 걸리는 경우가 많아 민간 투자자들이 꺼린다. 특히 최근 게임 시장 침체로 투자 심리가 위축되면서 중소 게임사들의 자금 조달은 더욱 어려워졌다.

업계는 이러한 투자 사각지대를 메우는 것이 바로 정책펀드의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영화 펀드가 중저예산 영화를 지원하듯, 게임 펀드도 대기업이 아닌 중소·인디 게임사를 집중 지원해야 한다”며 “그래야 게임 생태계가 건강하게 성장하고 새로운 IP가 계속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고군분투하며 글로벌 무대 장악한 한국 인디게임들

한국 인디게임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놀라운 성과를 내고 있다. 4명의 개발자가 만든 ‘셰이프 오브 드림즈’는 출시 3개월 만에 100만 장 판매를 돌파했고, 2025 대한민국 게임대상 인디게임상을 수상했다. 5명의 대학생이 만든 ‘산나비’는 스팀에서 압도적으로 긍정적(98%) 평가를 받으며 글로벌 팬덤을 형성했고, 2022년 대한민국 게임대상 인디게임상을 수상했다. ‘스컬’은 2022년 한국 인디게임 최초로 누적 판매량 100만 장을 달성했고, 2023년에는 200만 장을 돌파했다.

이들의 성공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셰이프 오브 드림즈는 MOBA와 로그라이크를 결합한 독창적 게임성으로, 산나비는 사이버펑크에 한국적 정서를 접목한 감동적 스토리로, 스컬은 머리를 교체하는 독특한 시스템으로 전 세계 게이머들을 사로잡았다. 이들 게임은 모두 소규모 팀이 만들었지만, 퍼블리셔의 지원을 받아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이들 게임은 네오위즈라는 퍼블리셔의 지원을 받아 개발에 집중할 수 있었다. 퍼블리셔는 마케팅, 유통, 현지화 등 개발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을 지원하며, 글로벌 시장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했다. 그러나 모든 인디게임이 이런 기회를 얻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중소·인디 게임사는 자금난과 퍼블리셔 부재로 개발조차 완료하지 못하거나, 출시 후에도 홍보 부족으로 시장에 알려지지 못한 채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다.

인디게임 성공 뒤에는 ‘민간 투자’…정부는 어디에?

주목할 점은 이들 성공작 모두 정부의 직접적 지원보다는 민간 투자와 퍼블리셔의 발굴 능력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문체부의 7,318억 원 정책펀드에는 이들 게임이 증명한 한국 인디게임의 잠재력을 뒷받침할 구체적 지원책이 없다. 영화는 별도 계정과 세부 펀드로 체계적 지원을 받는 반면, 더 큰 시장과 더 높은 수출 실적을 자랑하는 게임은 여러 분야와 함께 묶여 ‘기타’로 분류될 뿐이다.

업계는 이제 말이 아닌 실질적 행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셰이프 오브 드림즈, 산나비, 스컬이 증명했듯 한국 인디게임의 글로벌 경쟁력은 이미 검증됐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런 성공 사례가 계속 나올 수 있도록 중소·인디 게임사의 초기 개발 자금과 퍼블리싱 지원을 체계적으로 뒷받침하는 정부의 정책적 의지다.

문체부가 진정으로 ‘K-컬처 300조원 시대’를 열고자 한다면, 그 중심에 있는 게임 산업, 특히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인디게임에 대한 명확하고 구체적인 지원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의 이름을 빛낸 인디게임 개발자들이 자금난으로 꿈을 접는 일이 없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절실한 시점이다.

게임업계는 문체부가 게임 산업의 실질적 기여도에 걸맞은 독립적이고 구체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영화계정처럼 게임계정을 별도로 편성하거나, 최소한 게임 분야 투자 비중을 명확히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문체부가 ‘K-컬처 300조원 시대’를 실현하려면, 그 핵심 동력인 게임 산업에 대한 정책적 관심과 투자가 시급하다는 것이 업계의 한결같은 목소리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JAE CHUNG LIM

인디게임닷컴/대표, 1990년대 디지털라이프, 제우미디어에서 게임 전문 기자를 시작했으며, 종합 광고 대행사와 개발사를 거쳐 반다이남코그룹에서 10년 이상 IP 기반 온라인, 모바일게임 개발 및 국내외 사업을 담당했다. 현재 인디게임 관련 자문, 멘토링 그리고 다수의 공모전과 정부지원사업 전문 심사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Indiegame.com을 통해 건전한 게임 문화 정착과 스타트업, 인디게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