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마켓 인텔리전스 기업 센서타워(Sensor Tower)가 2월 26일 ‘센서타워 APAC 어워즈 2025’를 공식 발표했다. 아시아·태평양(APAC) 지역 퍼블리셔의 주요 게임과 앱을 선정하는 이 시상식은 올해 처음으로 PC·콘솔 부문을 신설하며 모바일을 넘어 그 영역을 대폭 확장했다. 총 54종의 수상작 가운데 한국 게임과 앱만 14개에 달하며 K-콘텐츠의 저력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이번 어워즈에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수백억 원을 들인 AAA 타이틀만이 아니었다. 단 5명이 개발한 중국 인디게임 ‘이스케이프 프롬 덕코프(Escape from Duckov)’가 ‘최고의 PC 인디게임’을 수상하며 화제를 모았고, 한국 인디 스튜디오 프로젝트문의 ‘림버스 컴퍼니(Limbus Company)’가 ‘최고의 스토리텔링 게임’에 선정되며 K-인디의 가능성을 세계 무대에서 입증했다.
오리가 된 타르코프, 세상을 뒤집다
‘이스케이프 프롬 덕코프’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하드코어 익스트랙션 슈터의 대명사인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를 유쾌하게 패러디한 작품이다. 빌리빌리(BILIBILI) 소속 소규모 개발 스튜디오 팀 소다(Team Soda)가 제작한 이 게임은 귀여운 오리 캐릭터가 탑뷰 시점으로 펼치는 PvE 탈출 슈팅 게임으로, 살벌한 PvP 경쟁 없이도 장르의 긴장감을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2025년 10월 16일 스팀 및 에픽게임즈 스토어를 통해 출시된 ‘이스케이프 프롬 덕코프’는 출시 5일 만에 판매량 100만 장을 돌파했고, 2주를 채 넘기지 않아 200만 장을 넘어섰다. 최고 동시 접속자 수는 55만 명을 기록하며 스팀 글로벌 인기 게임 순위 3위에 올랐다.
스팀 내 이용자 평가는 97% 긍정에 달하며 ‘압도적으로 긍정적’이라는 최고 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팀 소다는 출시 전부터 체험판을 배포해 10만 개 이상의 ‘찜(위시리스트)’을 확보했고, 출시 첫날부터 스팀 창작마당(Workshop)을 통해 모드 제작을 지원하며 유저들의 자발적인 커뮤니티 형성을 이끌었다. 16,500원이라는 합리적인 가격도 구매 장벽을 낮추는 데 한몫했다는 평이다.
K-인디의 자존심: 프로젝트문과 림버스 컴퍼니
덕코프가 중국 인디 신화를 쓰는 동안, 한국에서도 인디게임의 성공 서사는 조용히, 그러나 묵직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이번 어워즈에서 ‘최고의 스토리텔링 게임’을 수상한 ‘림버스 컴퍼니’는 2016년 설립된 국내 중소 인디 개발사 프로젝트문의 작품이다. 프로젝트문은 2016년 첫 작품 ‘로보토미 코퍼레이션’부터 2021년 ‘라이브러리 오브 루이나’를 거쳐 림버스 컴퍼니에 이르기까지 7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만의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차근차근 쌓아온 개발사다.
림버스 컴퍼니는 독창적인 세계관과 콘텐츠 업데이트로 글로벌 시장에서 흥행하며 인디 개발사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줬다. 센서타워에 따르면 림버스 컴퍼니는 2025년 기준 PC 인디 턴제 RPG 가운데 일일 활성 이용자 수(DAU) 1위를 기록했으며, 약 60만 명 규모의 DAU를 기반으로 모바일에서도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프로젝트문은 단순히 게임 흥행에 그치지 않고 지속 성장하는 기업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프로젝트문의 매출은 2022년 65억 원, 2023년 350억 원, 2024년 583억 원으로 가파르게 증가했으며, 수원시 광교에 신사옥을 설립하는 투자협약도 체결했다. 이러한 성장세는 ‘대기업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국 인디씬의 강력한 증거다.
한국 대형 게임사도 굳건: 총 8개 게임 수상
림버스 컴퍼니 외에도 한국 게임은 대형사 타이틀들이 어워즈 곳곳을 수놓았다.
넥슨의 ‘아크 레이더스’는 지난해 10월 30일 출시 후 누적 판매량 1,400만 장을 기록하며 ‘최고의 PvPvE 게임’에 선정됐다. 전투·은신·생존 요소를 결합한 익스트랙션 방식의 게임플레이로 서구권은 물론 아시아와 중남미 지역에서도 높은 인기를 끌었다.
‘최고의 PC 액션 게임’을 수상한 시프트업의 ‘스텔라 블레이드’는 플레이스테이션5에 이어 2025년 PC 출시를 통해 글로벌 핵앤슬래시 장르 최다 판매 타이틀로 등극했다. 넷마블의 ‘세븐나이츠 리버스’는 글로벌 신규 턴제 RPG 가운데 매출과 다운로드 모두 1위를 기록하며 ‘최고의 턴제 RPG’를 수상했다.
이 외에도 크래프톤 계열의 ‘인조이’가 ‘최고의 PC 라이프 시뮬레이션 게임’을, ‘스네이크 클래시’가 ‘최고의 하이퍼캐주얼 게임’을 수상했다. 한게임 포커는 2022년부터 4년 연속 아시아 포커 게임 매출 1위를 기록하며 누적 매출 2억5,000만달러를 넘어서 ‘최고의 포커 게임’에 선정됐다.
APAC 어워즈가 주목한 인디게임의 가능성
센서타워에 따르면 2025년 글로벌 디지털 경제는 인앱결제 기준 소비자 지출이 전년 대비 10.6% 증가한 1,670억 달러를 기록했으며, 비게임 앱 매출이 처음으로 게임을 추월했다. 또한 크로스 플랫폼 흥행이 확대됨에 따라 이번 어워즈는 PC 및 콘솔 부문까지 시상 범위를 확장했다.
이러한 시장 변화 속에서 ‘PC 인디 게임’ 부문을 별도로 신설한 것은 상징적이다. 인디게임이 더 이상 주류 시장의 ‘변방’이 아님을 데이터 기반으로 공식 인정한 선언이기 때문이다. 덕코프의 5인 팀과 프로젝트문이 넥슨·시프트업과 같은 수상 명단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은 이제 규모가 아닌 아이디어와 스토리텔링이 시장을 움직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강렬한 증거다.
“인디의 반란은 계속된다”
한편, 덕코프의 성공은 단발성 화제에 그치지 않았다. 2026년 2월에는 원작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와의 공식 컬래버레이션이 성사되며 또 한 번 주목을 받았다. 패러디 작품이 원작과 손을 잡는 이례적인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프로젝트문 역시 림버스 컴퍼니의 안정적 수익을 발판으로 새로운 패키지 게임 개발에 착수하며 인디의 정체성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프로젝트문 김지훈 디렉텉 “향후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개발하고 싶다”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안정적인 수익 구조가 필요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 ‘림버스 컴퍼니’는 그 토대를 성공적으로 마련한 셈이다.
센서타워 APAC 어워즈는 매년 APAC 지역에서 가장 주목받은 앱과 게임을 다운로드 수, 인앱결제 매출, 활성 이용자 수, 평점, 시장·산업적 영향력 등 정량·정성 지표를 종합해 선정한다.
올해의 수상 결과는 분명한 메시지를 남겼다. APAC 게임 시장은 거대 자본이 격돌하는 치열한 전장이지만, 동시에 단 하나의 아이디어와 몇 명의 개발자가 판을 뒤집을 수 있는 무대라는 사실이다. 규모가 아닌 창의력과 서사가 시장을 움직이는 시대, 작은 인디의 반란은 이제 예외가 아니라 거대한 흐름으로 점차 거듭나고 있다.
센서타워 APAC 어워즈 2025 전체 수상 목록은 ‘센서타워 APAC 어워즈 2025 수상자 발표’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